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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 리뷰 및 후기 Monopoly Splendor! - 스플렌더의 세 가지 반전
  • 2014-05-09 09: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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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920

Lv.1 뿅태

사진 083.jpg


사실 게임에 대한 기대는 거의 없었다. Equinox님의 글에서 뭔가 흥미롭다는 인상은 받았지만, 테마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외관은 큰 단점으로 다가왔다. 구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호평 일색의 후기가 이어지자 호기심이 동했다. '한 번 해보고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다이브다이스에서 모집한 <스플렌더> 리뷰어에 신청했다. 꼭 리뷰를 써야하는 것도 아니니 부담은 전혀 없었다. 현금도 아닌 쇼핑몰 포인트 5000점 때문에 거짓부렁을 쓸 이유는 없으니까. 바꿔 말하면 이런 말이다. 게임이 재미없었다면, 나는 애초에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진 085.jpg


<스플렌더>에는 세 가지 반전이 있다.

 


1. 무게

 

<스플렌더>가 처음 도착한 날, 떨리는 손으로 테이프를 자르고 에어캡에 둘둘 말린 게임박스를 꺼내드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박스가 무거워서 떨어뜨릴 뻔한 것이다.

 

가만있자, <스플렌더> 내용물은 카드랑 칩 빼면 끝 아닌가? 두툼한 마운티드 맵 하나 없는 작은 게임이 왜 이렇게 무겁담?



사진 044.jpg



박스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나 카드랑 칩뿐이다. 그런데 칩을 하나 꺼내 들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 네 놈이 원인이었군.


사진 047.jpg


이 칩. 묵직하다, 무겁다, 말이 많은데, 진짜 말 그대로 무겁다! ‘요 정도 무거울 거야’하고 생각한 것보다 살짝 더 무겁다. 분명 재질은 플라스틱인데, 이상할 정도로 묵직한 무게 때문에 플라스틱 같지 않다. 실용성도 있다. 쌓기 편하고, 몇 개 쌓여있는지 알아보기도 쉽다. 크기며 감촉도 적당해서, 다음 수를 고민하며 만지작거리기에 딱 좋다.


사진 049.jpg


<스플렌더>의 가격은 아마 이 녀석 때문에 높아진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좀 이해하기 힘든 투자일 수 있다. 컴포넌트를 게임 규칙에 필요한 도구쯤으로 생각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스플렌더>의 칩이 일반적인 종이 타일이었다면 <스플렌더>의 매력은 격감했을 것이다. 왜? 보드게임은 컴포넌트를 ‘만지작거리며’ 노는 놀이니까. 보석칩의 무게는 그 가치를 상징할 뿐 아니라, 우리가 내린 결정의 중요성도 표현한다. 다른 사람이 칩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다. 칩을 꼭 쥐고 있다거나, 탁자에 두들긴다거나, 쌓아놓은 칩을 들었다 놨다 하는 등, 사람에 따라 노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게다가 우리는 여기서 상대의 심리도 추측한다. ‘루비를 자꾸 만지작거리는 걸 보니, 루비로 뭘 해보려는 생각이 아닐까?’ 우리가 원목 체스말에, 질 좋은 바둑판에 투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진 067.jpg




2. 규칙

 

같이 온 한글 설명서의 분량은 4쪽이었다. 간단하다는 게임답게 퍽 적은 분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규칙 자체는 더 간단하다.

 

일단 설명서 1쪽은 제목과 일러스트가 전부다. 사파이어를 째려보고 있는 보석상의 얼굴이 아주 심각하지만, 그 정도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읽어야할 텍스트는 전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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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쪽으로 넘어가면 내용물 목록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것도 규칙은 아닌 셈. 하단부에 게임 준비 방법이 나온다.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다. 4명이서 플레이한다면 그림 그대로 준비하면 끝.

 

본격적인 규칙 설명은 3쪽부터 시작된다. 오 읽을 게 꽤 되는구나. 그래도 핵심 규칙은 6문장으로 요약 가능하다. : 자기 차례가 되면 다음 네 행동 중 한 행동을 할 수 있다. 1) 같은 보석을 2개 가져온다. 2) 서로 다른 보석을 3개 가져온다. 3) 보석을 써서 개발카드를 구매한다. 4) 개발카드를 1장 예약하고 금을 1개 가져온다. 누군가 15점을 모으면 게임이 끝나고, 가장 승점이 높은 사람이 승리!

 

3쪽에서 시작된 설명은 4쪽까지 이어지는데, 4쪽 절반을 못 넘기고 끝이 난다. 나머지 절반은 작가랑 아티스트 소개.



sp_0.jpg



즉, 4쪽 분량의 설명서에서 규칙 설명은 1쪽 반밖에 안 되는 셈.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때도 5분 이상 걸리지 않는 양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너무 간단해서 과연 이딴 게 재미가 있을까 의심마저 들었다.


 

3. 모노폴리(Monopoly)

 

Equinox님에게 이 게임이 테크트리를 쌓는 C&C였다면, 내게 <스플렌더>는 <모노폴리>였다. 같은 색의 땅 대신 같은 색의 개발카드와 보석을 모으는 <모노폴리>.

 

과장이 아니다. 그냥 하는 소리도 아니다. 장담한다. 이 게임을 <모노폴리>로 보는 순간부터 게임의 재미는 배가 된다.

 

사실 설명서를 다 읽고 홀로 테스트 플레이를 해봤을 때는 실망감이 앞섰다. 간단한 규칙만큼이나 밋밋한 진행이었다. 카드 예약을 통한 선점 위주의 상호작용은 예상과 달리 그리 극적이지 않았다. 색깔 별 카드를 골고루 모은 다음, 차차 높은 단계의 카드를 사다보면 게임이 끝났다. 똑같은 전략, 똑같은 진행, 고로 낮은 리플레이성. “이게 뭐야!” 흩어진 개발카드를 단계 별로 다시 모으는데, '엇!' 하고 깨달음이 왔다.

 

색깔 별 개발카드 숫자가 일정하다.



사진 087.jpg


사진 090.jpg


사진 094.jpg



그러니까 색깔 별로, 1단계 개발카드는 8장, 2단계 개발카드는 6장, 3단계는 4장이다.

 

뭐, 밸런스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결정이다. 색깔 별 개발카드 숫자가 달랐다면 각 보석의 가치도 달라졌을 테니까. 하지만 여기엔 밸런스 이상의 의미도 있다. 만약 내가 한 색깔의 개발카드 중 절반을 독점한다면 어떻게 될까?(정확히는 과점이란 표현이 맞겠지만) 모든 단계의 카드를 독점할 필요도 없다. 2단계나 3단계 카드는 비싸기 때문이다. 1단계 카드 중 한 색깔을 절반만(3인 기준) 먹어도 독점은 그럭저럭 유지된다. 



사진 054.jpg



그런데 이 독점의 효과가 상당하다. 예를 들어, 이번 판 귀족 대부분이 루비를 원한다고 해보자. 내가 루비를 독점하는 한 다른 사람들은 귀족 타일을 절대로 먹을 수 없다. 따라서 나는 그동안 천천히 다른 개발카드를 모아 귀족 타일을 먹으면 된다. 또, 3단계나 2단계 카드를 보고 많이 필요한 보석 하나를 독점하는 전략도 괜찮다. 이 경우 나는 독점한 보석이 필요한 모든 개발카드를 선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 <스플렌더>의 선점은 단순히 카드 예약뿐 아니라 독점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사진 097.jpg



뿐만 아니다. 카드 예약의 용도도 확대된다. 카드 예약으로 상대가 먹을 것 같은 카드를 가로챌 수도 있지만, 독점을 만들고 유지할 수도 있다. 1단계 개발 카드는 색깔 별로 8장뿐이다. 독점을 위해선 3인 기준 4장은 장악해야 한다. 하지만 이 4장을 전부 구매할 필요는 없다. 한두 장 정도는 예약만 해도 독점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독점이 중요해지면, 견제의 범위도 달라진다. 카드 예약으로 개발카드를 선점하는 것만이 <스플렌더>의 유일한 견제는 아니다. 보석칩 가져오기도 살벌한 견제의 장이다. 중요한 보석칩을 쌓아두면 독점을 유지하고 강화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 065.jpg



물론 독점은 만능 전략이 아니다. 특정 보석에 집중하는 플레이는 카드 예약을 통한 견제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모든 것은 상황에 달렸다. 무슨 카드가 나와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결국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게임의 깊이다. <스플렌더>의 전략성은 보기보다 훨씬 깊다. 독점 전략만 하더라도 방향성이 다양하다. 많은 귀족이 원하는 개발카드에 집중하는 전략이 있는가 하면, 3단계 개발카드 구매에 필요한 보석을 독점하는 전략도 있다. 또 1단계부터 개발카드를 골고루 모으면서 안정적인 테크트리를 타는 전략이 있는가 하면, 보석칩만 꾸준히 가져오다가 남들보다 한 발 앞서서 2단계나 3단계 개발카드를 먹는 전략도 있다. 특히 3인 혹은 4인플에서 전략은 매우 다양해진다. 일반적으로는 많은 귀족이 원하는 개발카드를 독점하는 전략이 강력하지만, 경쟁자가 있을 경우엔 그렇지도 않다. 그러니 조심할 것. 마침내 독점을 만들었다며 의기양양해 하는 사이, 누군가 5점짜리 개발카드를 먹으면서 갑자기 게임을 끝낼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나는 독점에 눈을 뜨면서 비로소 <스플렌더>의 참맛을 느꼈다. 밋밋한 배추절임인줄 알았던 음식이 알고 보니 고추 가루와 젓갈이 버무려진 김치였다고 해야할까나. 고추 가루처럼 톡 쏘는 긴장이 게임 내내 이어지고, 젓갈만큼이나 시큼한 견제가 속을 뒤집어 놓는다. 나는 이 맛을 행여 다른 사람들이 놓칠까봐, 규칙 설명 후에 늘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이건 규칙이 아니지만, 알고 있으면 좋을 듯해서 알려주는 거야. 1단계 덱에는 개발카드가 색깔 별로 8장, 2단계 덱에는 6장, 3단계 덱에는 4장씩 들어 있어. 게다가 보면 알겠지만, 같은 카드는 한 장도 없어! 그럼 게임을 시작해볼까?”



사진 081.jpg




총평

 

누가 이 게임을 가벼운 필러(filler) 게임이라 하는가? 마지막으로 한 4인플에서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고.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차례가 너무 빨리 돌아와. 기다리는 시간이 없어.” 그렇다. 정말 쉴 틈이 없다. 덱에 남은 색깔별 개발카드 장수 계산해야지, 다른 사람 전략 파악해야지, 다음 수 고민해야지, 기다리는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인원이 늘면 기다리는 시간도 늘어나지만, 그만큼 분석해야할 정보도 배가 된다. 즉, 2인에서 4인까지 장고로 인한 지루함은 없다. 이는 순전히 게임의 깊이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규칙 설명은 5분이면 충분하다니 참으로 놀랄 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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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divedice님에 의해 2014-05-09 13:52:55 소감과 후기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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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2014-05-09 12:58:02

    음... 후기 감사합니다.계속 참아왔었는데, 결국 결제했네요. 후하... ㅎㅎ
    • Lv.1 길라잡이
    • 2014-05-09 11:25:43

    이...이런 퀄리티의 후기라니요!!! 스플렌더 안지른 분들 결재버튼 누르는 소리가 들리는듯합니다 ㅋㅋ
    • Lv.1 세조
    • 2014-05-09 10:20:14

    와 스플랜더를 다시 보게 하는 리뷰네요. 훌륭한 리뷰 잘 보았습니다. 저도 스플랜더 처음 해봤을때 느낌은 별로 였는데.리뷰를 보니 다시 해보고 싶어지네요. 
    • 2014-05-09 10:15:20

    이런 내공의 리뷰라니.. ㄷㄷㄷ 하네요.. 다다에 추천기능이 필요합니다~~
    • Lv.2 부르심
    • 2014-05-09 10:05:42

    깊이가 있는 리뷰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
    • Lv.1 helloJames
    • 2014-05-09 09:53:47

    멋진 후기네요! 뽐뿌가 제대로 옵니다 ㅎ
    • Lv.1 뿅태
    • 2014-05-09 19:54:20

    ㅎㅎ 300은 넘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결재했습니다 캬
    • Lv.1 뿅태
    • 2014-05-09 19:54:40

    재밌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 Lv.1 뿅태
    • 2014-05-09 19:55:46

    추천 마음은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Lv.1 뿅태
    • 2014-05-09 19:56:48

    네, 취향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이런 게임은 약간 연구를 하면 더 빛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 Lv.1 뿅태
    • 2014-05-09 19:57:19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플텍은 받아야지요~~
    • Lv.1 뿅태
    • 2014-05-09 19:58:25

    ㅎㅎ 어차피 지를거 조금 쌀 때 지르는 겁니다!! 턱박스도 얻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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