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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 리뷰 및 후기 [리뷰어]태양신 라 - 경매로 건설하는 이집트 문명
  • 2014-06-15 16: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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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06

Lv.1 메모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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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신 라"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사무라이”, “모던 아트”, “켈티스” 등을 비롯하여 어마어마하게 많은 게임을 디자인한 라이너 크니지아 박사의 1999년작으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문 레”와 마찬가지로 이집트 문명을 테마로 하고 있으며, “메디치”, “모던아트”와 함께 라이너 크니지아의 경매 트릴로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게임들 중 가장 독특하고 간단한 경매 방식을 채용하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셋 중 가장 좋아하는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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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없이 풍부한 컴포넌트)

게임에는 카드가 전혀 없고 오로지 타일과 목제 태양 마커, 점수 토큰, 그리고 라 마커, 타일 주머니, 그리고 보드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각 플레이어는 우선 점수 10점과, 규칙에 따라 나눈 태양 마커를 가져갑니다. 이렇게 가져간 태양 마커는 그 자체가 경매에 사용하는 돈의 역할을 하는데, 가장 낮은 숫자를 가져간 플레이어가 가장 높은 숫자도 함께 가져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5인 기준으로 각 플레이어가 가져가는 최대 숫자와 최소 숫자의 합은 18로 맞추어져 있습니다. 밸런스가 치밀하게 조절되어 있는 것이죠. 라이너 크니지아는 원래 수학자인데, 과연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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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 기준으로 각자 위에서 한 줄을 가져가게 된다.)


게임은 총 3시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시대는 가장 높은 숫자의 태양 마커를 가진 플레이어부터 시작합니다. 

자신의 턴에 할 일은 아주 간단합니다. 다음 셋 중 하나만 하면 됩니다. 

1. 주머니에서 타일 1개를 꺼냅니다. 
2. 라를 선언합니다. 
3. 신 타일을 사용합니다. 

이 중에서 '신 타일 사용'은 신 타일이 없을 경우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선택지는 타일을 꺼내거나 라를 선언하는 것 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머니에서 타일을 꺼냈고, 그것이 붉은 색 ‘라’ 타일이 아니라면 보드의 경매 칸에 놓고 턴을 끝냅니다. 이렇게 경매 칸에 모이는 타일들은 경매시 한꺼번에 팔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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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이 '라' 칸, 아래쪽이 '경매' 칸이다. 경매 칸의 타일들은 한꺼번에 팔린다.)

라 타일을 꺼냈다면 보드의 라 칸에 놓고, 경매가 자동으로 시작됩니다. 불가항력적인 경매 시작인 셈이죠. 

한편 경매 칸에 모인 타일들이 슬슬 가져갈만 하다 싶으면 ‘라’를 직접 선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라 마커를 자기 앞에 가져오고 경매를 시작합니다. 

신 타일은 이런 주된 흐름에서 살짝 벗어난 변칙적 플레이를 허용합니다. 신 타일은 딱 여덟 개가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있다가 자기 턴에 버리고, 경매 칸에 있는 타일 하나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 게임에서 타일을 받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경매를 통해 ‘묶음’으로 사는 것 뿐인데, 이 방법으로 자기에게 정말 필요한 것 하나만 쏙 빼올 수 있습니다. 요컨대 별 필요도 없는 ‘문자 무제한+통화 무제한+데이터 무제한’ 패키지 상품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데이터 무제한’만 고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예를 드니 굉장히 유용할 것 같다는 실감이 드는군요. 

다시 경매로 얘기를 돌리자면, 경매가 시작되면 각 플레이어는 일반적인 경매와 달리, 경매를 선언한 플레이어의 왼쪽 플레이어부터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단 한 번씩만 입찰을 할 수 있습니다. 입찰에는 가지고 있는 태양 마커를 사용합니다. 자기가 입찰을 할 차례가 되면 가지고 있는 태양 마커 중 하나를 앞으로 내서 입찰하거나 패스하는 것이죠. 그렇게 돌아가서 경매를 선언할 플레이어가 마지막으로 입찰을 할 수 있습니다. 경매를 선언한 만큼 낙찰 받을 확률이 높은 셈이죠. 
그런데 이 경매에서 특이한 점은 한 번씩만 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 있다는 것도 있습니다. 모든 플레이어는 사용하지 않은 태양 마커를 앞면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누가 얼마를 가지고 있어서 이번 경매에 무엇을 쓸 것인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습니다. 다들 유리지갑을 가지고 경매에 참여하는 셈이죠. 따라서 일반적인 경매에서 볼 수 있는 허세나 기싸움은 없고, 간단하면서 눈치보기가 용이합니다. 

경매에서 낙찰을 받으면, 자신이 사용한 태양 마커는 보드 가운데 놓고, 보드 가운데 있던 태양 마커와(처음에는 1이 놓여있습니다) 경매 칸에 놓여있던 타일을 모두 가져옵니다. 그리고 가져온 태양 마커는 경매 기회를 한 번 사용했다는 의미로 뒤집어 놓고, 타일들은 잘 정리해서 놓습니다. 이렇게 가져온 타일들은 각각의 규칙에 따라 점수가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해서, 모든 플레이어가 자신의 태양 마커를 모두 사용하면, 혹은 라 타일이 인원에 따라 정해진 갯수만큼 보드에 놓이면 한 시대가 끝납니다. 그런데 이 때 혼자 남는다면 라 타일이 가득 차서 시대가 끝나버리기 전까지 혼자 마음에 들때까지 경매칸을 채워가면서 버틸 수도 있게 됩니다. 운이 좋으면 정말 마음에 드는 타일들을 가져올 수 있겠지만, 그 전에 라 타일이 가득 차면 경매 기회를 쓰지 못하고 시대가 끝나버립니다. 이것도 굉장히 흥미로운 재미 요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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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혼자 남겨지면 라 타일이 나오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외로운 잭팟을 노려야 한다. 재앙 타일이 둘이나 있어 한 번 갈아엎어야 하겠지만...)


시대가 끝나면 다음 시대를 시작하기 전에 각자 가지고 있는 타일의 갯수에 따라 점수를 계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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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놓은 타일들. 왼쪽부터 파라오, 강, 문명, 금, 신, 건물.)

신: 신 타일은 하나 당 2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점수를 받고 버립니다. 그러니 시대가 끝나기 전에 써버리는 게 낫겠죠.

파라오: 파라오가 가장 많은 플레이어들은 5점을 받고, 가장 적은 플레이어들은 2점을 잃습니다. 그러니 다른 플레이어들과 파라오 갯수를 잘 비교하면서 게임을 진행해야 합니다. 1등은 못하더라도 꼴등은 하지 않는 편이 좋겠죠.

강: 강 타일에는 나일강 타일과 ‘범람’ 타일이 있습니다. 이들은 똑같이 한 개당 1점을 주는데, 범람 타일이 한 개도 없으면 1점도 받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범람 타일은 점수를 계산한 뒤에는 버립니다. 따라서 강 타일을 많이 모은 사람은 눈에 불을 켜고 범람 타일을 가져와야 하죠. 나일강의 범람이 그 유역을 풍요롭게 해 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 사실이 잘 반영된 시스템입니다. 

문명: 문명에는 다섯 종류의 타일이 있는데, 한 개도 없는 플레이어는 5점을 잃습니다. 한편 세 가지를 모은 플레이어는 5점을, 네 가지를 모은 플레이어는 10점을, 다섯 가지를 모두 모은 플레이어는 15점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것들도 점수를 계산한 뒤에는 버립니다. 문명 발전도 게을리 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금: 금은 보너스 점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 당 3점을 받고 버립니다. 

이런 방식으로 점수를 계산한 뒤, 보드에 놓인 타일들을 모두 버리고, 모든 플레이어는 자신이 가진 태양 마커를 앞면으로 뒤집어,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숫자가 가장 높은 태양 마커를 가진 플레이어부터 턴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세 시대를 끝내고 점수계산을 마치면 게임이 끝나는데, 세 번째 시대가 끝난 뒤에는 다른 시대보다 계산할 것들이 더 많습니다. 그동안 계산하지 않았던 건물과 태양 마커까지 점수에 포함됩니다. 

건물: 건물 타일은 8종이 5장씩 있어서 상당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다른 것들과 달리 게임이 끝날 때만 점수를 계산합니다. 두 가지 방법으로 계산하는데, 일단 6종류까지 모았다면 종류당 1점을, 그리고 7종류를 모았다면 10점, 8종류를 모두 모았다면 15점을 받습니다. 그리고 같은 건물을 3개 모았다면 5점, 4개 모았다면 10점, 5개 모았다면 15점을 받습니다. 따라서 여러 종류를 모으거나, 한 종류를 최대한 많이 모으는 방향으로 플레이 하는 것이 좋겠죠.

태양 마커: 각 플레이어는 각자 자기가 가진 태양 마커의 숫자를 더합니다. 합이 가장 높은 플레이어들은 5점을 얻고, 가장 낮은 플레이어들은 5점을 잃습니다. 

이렇게 세 번째 점수계산까지 끝낸 뒤에, 점수가 가장 높은 플레이어가 승리하게 됩니다.



“태양신 라”는 이렇게 진행되는 게임으로,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경매할 타일을 추가하거나 경매를 선언한다.”라는 지극히 간단한 기본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말은 간단하지만 여기에는 '더 갖고 싶으면 가질 기회를 남에게 넘겨야 한다’는 딜레마가 포함되어있어 여간 재미나고 고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딜레마는 미하엘 샤흐트의 2002년작 “컬러레또”에서 약간 다른 모습으로 발견할 수 있는데, 여기서 인기작 “줄루레또”까지 발전한 것을 보면 이 딜레마가 얼마나 게임적으로 우수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에 덧붙여, 누가 얼마를 제시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타일이 필요할지 훤히 보이는 경매 방식은 경매 시스템에 별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참여해서 재미나게 즐길 수 있는 훌륭한 것입니다. 또한 경매로 낙찰을 받을 수 있는 횟수가 한정되어 있어 숫자가 낮으면 낮은 대로 힘을 발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 낮은 숫자를 들고 공격적인 경매를 시도를 하는 것도 가능하죠.
게다가 타일에는 늘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각 종류별로 해당 종류의 타일을 파괴하는 “재앙” 타일도 있어서 플레이어가 매 턴 경매에 올라온 타일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태양신 라”에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크니지아 박사 게임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집트 문명이라는 테마와 타일 경매라는 내용은 딱히 관련성이 없기도 하고, 점수 계산 방식도 직관적이지 못해 숙지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테마와 내용이 아주 엉뚱하게 따로 논다고는 볼 수 없고, ‘이집트 문명 발전’이라는 테마는 제법 흥미를 일으킬만한 것이며, 점수 계산에 필요한 정보는 대부분 보드에 표시되어 있어서 금방 익숙해질 수 있죠. 

결론적으로 “태양신 라”는 2에서 5명이 한 시간 정도로 비교적 빠르게 진행할 수 있으면서 내용이 명쾌하고, 경매와 문명 발전과 ‘뭔가를 모으는’ 재미를 잘 갖춘 게임입니다. 게다가 누구 한 명의 운이 좋다고 잘 풀릴 수도, 누구 한 명의 실력이 빼어나다고 압도적인 차이를 낼 수도 없는 시스템이죠. 이 말은 초보든 고수든 거의 같은 선상에서 동등하게 즐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수많은 보드게임 중에서 누구에게든 부담없이 권할 수 있는 게임을 열 개 뽑으라면 그 중에 들어갈만한 명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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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Lv.1 쵸리
    • 2014-06-17 09:50:08

    정말 크니지아의 명작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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