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게 리뷰가 길어졌다. 사실 처음에는 SETI 얘기가 다였다. “님들~ <콘택트> 보셨죠? <레포갤>에도 SETI 나와요. 아이, 신기해라!” 정도로. 테마가 게임에 얼마나 잘 녹아 있는지 설명하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냉전이 떠올랐고 이내 <레포갤>의 느낌 전체가 ‘은하계는 냉전 중’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 누가 내게 <레포갤>이 어떤 게임인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30분짜리 에픽 냉전 게임.

30분? 초심자랑 하면 더 걸릴 수 있지만 숙련자들끼리는 30분 안팎이 기본이다. 인원수도 상관없다. 언제나 30분. 동시에 액션 카드를 고르고 동시에 액션을 수행하는 플레이 방식 때문이다. 더불어 세팅도 간편하다. 시작카드 골라내는 게 아주 쪼오~끔 귀찮기는 해도, 그 외에는 승점칩 꺼내놓고 덱 셔플하면 끝이다. 게다가 세팅이 간편해서 그런지 휴대까지 편하다. 카드 한 무더기랑 승점칩만 챙기면 되는데, 한창 학교 다닐 때는 작은 화일에 다른 문서랑 같이 넣어 다녔었다(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에픽? 뭐가 에픽(epic)한지야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테지만, 내 기준은 이렇다. 일단 발전해서 점점 강해진다는 느낌이 있어야 하고, 발전 경로도 압도적으로 다양해야 한다. 스케일도 크면 좋다. 비록 내가 <아그리콜라>를 좋아하긴 하지만 백날 농사나 지어봤자 에픽한 느낌은 안 드니까. 반면 <레포갤>은 기준에 딱 들어맞는다. 정착, 개발로 점차 발전하는 나라. 서로 기능까지 완전히 다 다른 카드가 91장(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기본판 <도미니언>의 카드 종류가 32종이다. 그 리플레이성 쩔어 준다는 <도미니언>이!). 스케일은 은하계 전체. 이게 에픽이 아니면 세상에 에픽은 없다.

냉전? 내가 지금까지 다 설명한 내용이다. 총 5편 중 3편 내내 냉전 얘기만 했는데 더 할 얘기가 있겠는가? 그냥 한 마디만 더 하겠다. <황혼의 투쟁>이라고 냉전을 본격적으로 다뤘다는, BGG 1위 게임 있잖은가? 내 보기에는 앙꼬 빠진 찐빵이다. 왜냐? 도대체가 냉전 게임이라면서 어떻게 ‘체제’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있냐~ 이 말이다. 냉전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이념 갈등이자 체제 대결 아닌가?

으으 리뷰를 ‘용감한 녀석들’로 끝내고 싶지 않았는데. ㅠㅠ 아니에요. 저 <황혼의 투쟁>은 물론이고 <도미니언>도 좋아한답니다. 다만 내 마음 속 명작이 한국에서만 찬밥 신세라는 사실에 울분이 그만.

팬심은 여기까지.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